5 VIA 프로세서의 발전사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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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ixとCentaur、VIAのCPUロードマップ

켄타우로스, 사이릭스CPU의 커집니다)


대만 VIA테크놀러지가 CPU제조사인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VIA는 이미 리테일용 CPU 시장에서 철수했고, 그 의미에서 조립컴퓨터 사용자가 '그다지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해도 괜찮다.

그러나 이 회사는 CPU사업 자체를 포기한 것도 아니고, 임베디드 시장용으로 오히려 라인업을 확충하는 방향에있다. 또한 VIA의 CPU를 탑재한 Mini-ITX '에덴 플랫폼'은비교적 쉽게 사용할 수 있으며, 확실하게 윈도우와 리눅스를 구동할수 있고, 특히 소형 크기와 저소음 용을 중시하는 사용자에게 선호되는 경향마저 있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는 VIA를 소개하려 한다.

VIA는 원래 CPU호환 칩셋을 판매하고 있던 업체였다. 그것이 2000년 미국 네셔널 세미컨덕터사(社)(이하 NS)로부터 '사이릭스'(Cyrix)를, 미국 IDT사로부터 '켄타우로스'(Centaur)라고하는 2개의 CPU회사와 해당 CPU의 포트폴리오, 판매권에 이르기까지를 일거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 갑자기 인텔과 AMD에 이어 제 3의 CPU업체가되었다. 우선은 그 인수한 2개의 CPU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겠다.

387호환 FPU에서 시작된 사이릭스의 역사.

우선 '사이릭스'에 관하여에서 말하겠다. 사이릭스 자체는 1988년에 설립된 팹리스(하드웨어 소자의 설계와 판매만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로 종합반도체기업(IDM)과 달리 반도체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 CPU공급 업체였다. 처음에는 80387호환 FPU(부동 소수점 보조 프로세서)등을 공급하고 있었지만, 그 후 i486호환 CPU를 선보였다. 이것에 이어 크게 성능을 올린것이 'M1'이었고, 2개의 명령어를 동시 실행하는 프로세서의 개발에 착수한다. 하지만 이것이 개발에 난항을 격자, M1의 일부로써 인오더 1명령 실행 코어(M1SC)를 개발하여 'Cx5x86'로서 발매했는데, 이것이 예상외로 잘 팔렸다. 덧붙여서 M1SC이후 NS의 임베디드 시스템을 온칩화 한것이 '미디어GX'와 '지오드'로 이어졌고, 현재AMD의 '지오드LX'로 그 구조는 남아있다.


사이릭스의 최후의 유산. AMD 지오드LX

이야기를 M1으로 되돌 리자. 개발이 난항을 겪었다고는 하지만 M1은 1995년 80MHz제품(PR90)이, 이듬 해인 1996년 에는100~133MHz제품(PR120~PR166)이 각각 '6x86'의 명칭으로 발매된다. 'PR'란 '퍼포먼스 레이팅'의 약자로 클럭 주파수로 CPU성능 지표로써 고안된 것이다. M1이 동일 주파수의 펜티엄을 웃도는 성능을 냈으니, 80MHz의 M1은 '90MHz의 펜티엄급이다'라고하는 것으로, 'PR90'라고 칭하는 것이다.


M1을 바탕으로 저전력화한 '6x86L'

6x86은 마지막에150MHz제품(PR200)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그만큼 소비 전력도 컸고 PR200제품은 최대 24.6W에 달했다. 따라서 중간에 IBM의 0.5μm공정(일부 제품은 0.44μm)을 사용하면서 회로를 다시 설계하고 소형화를 도모함과 동시에 코어 전압을 낮추어(3.52V→2.8V) 저전력 화를 달성한 '6x86L"과, 0.35μm공정을 사용하여 코어 전압을 2.45V까지 내린 '6x86LV'가 등장한다. 150MHz제품과 비교하면 6x86L가 17.1W, 6x86LV은 13.2W까지 최대 소비 전력이 떨어졌으므로 일단 이것으로 소비 전력은 해결한 셈이되지만, 출시가 늦는 바람에 이후에도 영향을주게된다.

이것에 이어 사이릭스는 1997년 'M2'코어를 투입한다. 제품명은 '6x86MX'로써 큰 차이는 MMX유닛을 내장한 것이었다. 이것은 MMX펜티엄 전용의 응용 프로그램에서 동작하게 되어있었다. 먼저 1997년 133~200MHz제품이 PR166~PR233라는 이름으로, 233MHz클럭의 PR266가 1998년 에 투입된다.

사이가 상당히 비어있는 것은, 또다시 공정의 변화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M1때도 그렇지만, 사이릭스는 설계만 하는 팹리스 기업이므로 생산은 IBM이나 SGS톰슨(현 ST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 NS등 3개사에 위탁하고 있었다. 따라서 파운드리(제조 업체)에 따라 동작 주파수와 소비 전력이 약간씩 다른것 것은 어떤 의미로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것이 꾀나 귀찮은 이야기가되어 버린다. M2의 실제 제조 공정 자체는 0.35μm이면서 실제 배송되는 제품은 미세 공정이 변화하고있었고, 최후에는 대부분 0.25μm공정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구조는 6x86MX와 같았던 사이릭스'MII'

도중에 공정이 바뀌었기 때문에 초기 M2의 다이 크기는 200mm2가까웠고 클럭도 200MHz정도였던 였지만 후기에는 100mm2근처까지 축소되었고 클럭도 300MHz까지 올랐다. 1998년 사이릭스는 다이크기가 작아진 후기6x86MX 이름을 '사이릭스MII'로 변경한다. 다른 것은 이름뿐 내부는 완전하게 동일하다. 이 MII는 233MHz클럭의 PR300부터 시작하지만 기존 6x86MX로 판매하고 있던 제품도 MII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에 300MHz클럭의 제품이 PR433로 1999년 등장한다.

사이릭스는 이어서, 2D/3D그래픽 기능과 메모리 컨트롤러, 공유 L2캐시메모리를 온칩화한 '카이엔'(SoC)과다이렉트 RDRAM을 2채널 탑재하고 고속 동작을 가능하게한 CPU코어를 탑재한 '할라페뇨'코어와 그 전에는 '세라노'(자세한것은 불명)등을 예정하고 있었고, 1998년 개최된 반도체 산업 국제회의 (Micro Processor Forum)에서 이러한 로드맵이 공개되었다.

또 이들과는 별도로, M2코어 인터페이스를 당시의 '소켓7'로부터 새로운'소켓370'과 호환되게 하고, 동시에, L2캐시를 탑재하여 18μm공정으로 고속 화한 '고비'프로세서도 개발되고 있었지만, 이것이 갑자기 모두 보류되어 버린다.

이에 앞서 1997년 사이릭스는 NS의 자회사로 인수된다. 사이릭스는 이를 통해 자금 면에서 불안을 해소함과 동시에 NS의 파운드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NS는 반도체 공장 가동률을 올리고 동시에 제품 라인업을 증가시키는 이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NS자신이 재정적 문제에 직면하고 NS가 예상한 정도의 가동률 향상 및 제품 라인업의 증가를 얻을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 결과 1999년 NS는 사이릭스의 매각과 PC용 CPU사업에서 철수를 발표했다. 이후 매각 협상에 들어가, 같은해 VIA테크놀러지가 사이릭스를 인수, 카이엔과 할라페뇨코어는 사라지고 거의 개발이 끝나 있었던 고비코어 만이 '조슈아'로 코드 이름을 바꾸고 살아남아, 2000년 사이릭스III로 임시 발매가 예정되었다.

그러나 이 조슈아코어는 발매되지 않은 채 사라지고 지금까지 사이릭스가 쌓아온 CPU자산의 대부분은 그대로 사장되는 일이되고 말았다. 설계 팀은 흩어지고, 유일 남겨진 것은 사이릭스와 인텔의 소송 결과 남겨진 일부 권리뿐이었다.



조슈아코어의 데모시스템

출처: via, ascii
원문: http://ascii.jp/elem/000/000/435/43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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